St.Eulalia
성녀 에우랄리아는 스페인에서 큰 축일로 지내는 동정 순교자이나, 그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그녀는 스페인의 메리다 태생으로 12살 때에 디오클레씨안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로 인하여 순교하였다.
메리다 지방의 집정관은 어린 그녀에게 크리스챤 신앙 포기를 여러 번 종용하고, 또 살려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끝끝내 이방인의 신에게 제사지내기를 거부하므로써 많은 고문을 받고 운명하였다.
스페인의 시인 뿌르덴씨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운 시신 위에 흰 눈이 내려 덮혔고,
흰 비둘기가 그녀의 입술에서 나와 하늘을 날았다고 노래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을 스페인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 골 그리고 이탈리아 등지로 빨리 전파되었고,
성 알델모는 잉글랜드에서, 성 베다는 성 에텔드리나에게 보내는 찬미가에서 그녀를 찬미하였고,
성 아우구스띠노도 순백한 그녀의 영혼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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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이 그림의 특징은 작가의 시점과 구도..
그리고 하얗게 덮인 눈과 에우랄리아 주변의 비둘기..
눈은 이상하게도 추위와 따뜻함,
그리고 순수함을 동시에 나타내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그림이 평범하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그림 정확히 한 가운데, 눈의 하얀색과 같아 잘 한눈에 띄진 않지만
에우랄리아에게로 지금 막 날아드는듯한 아름다운 흰 비둘기 한마리..
하나님의 손길을 상징하는 듯한 비둘기의 날개짓의 아름다움..
J.W.Waterhouse, ‘The Favorites of Emperor Horonius’
교보문고에서 Waterhouse 라는 사람의 작품집을 보게 되었다
그냥 지나가다 한페이지를 펴 보았는데 이 그림이 양면에 걸쳐 인쇄되어 있었다
제목과 그림만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 이것저것 유추해야했다
호로니우스라는 황제는 작가가 직접 본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럼 작가는 호로니우스의 이야기를 책이나 어디선가 보고, 그 장면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왜 호로니우스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가 그린 장면은 어찌보면 무언가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나는 혼자 이 그림을 한참 입가에 미소를 띄고 즐겁게 들여다보았다..
괜히 영화 ‘왕의 남자’에서 광대들의 놀이를 즐거워하던 왕이 생각난다.
영화에 나오는 그는 처음에는 위엄차게 등장하지만 광대들의 우스꽝스런 놀이에 푹 빠져 체통은 아랑곳없는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 호로니우스라는 황제는 그정도로 흐트러지지는 않는다.
황제의 표정과 자세가 진지하고 위엄차다.
작가는 황제는 바보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진지한 자세에서 그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 위엄있어보이는 자세이지만
막상 황제인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비둘기의 모이를 주는 일이다.
그가 이 일을 사뭇 즐겼다는 것은 주변의 신하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신하들은 허리를 숙였으나 몰래 황제가 하는 일을 보고 있다.
신하들의 표정을 보면 뭔가 어이없다는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그저 호기심인것 같기도 하지만,
웃지는 않는걸 보면 황제에 대한 두려움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 황제에 대해 작가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 워터하우스는 황제가 새들에게 모이를 준다는 사실에 대단히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일은 황제다운 일은 아니다. 사소한 일이면서 하찮은 일, 또는 한가해보이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이런 한가한 일을 즐겼다.
저 오른손으로 새들에게 정성스레 모이를 주고 고개숙여 관찰하는 모습은 황제가 정신적으로 이상해서라기보다
무언가 인생과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새들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우리 교회 사찰집사님이 교회 마당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던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낭만적?으로 보였다.
몇몇 사람들은 비둘기가 더럽다고 싫어하지만, 나는 비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그 때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어본 일이 있다. 집사님이 가르쳐주시기를
가만히 움직이지 말고 손만 펴면 된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비둘기가 내 손에도 내려와 앉았다.
또다른 생명과의 교감, 나는 그 순간 그런 걸 느꼈다.. 비둘기가 나를 받아준다는 기분.
황제는 그런걸 즐겼을지 모른다..
머리아픈 국정들보다.. (저 신하들이 들고 있는 책이 무엇이겠는가? 결재서류같은 건 아닐라나?)
그는 이런 한가한 일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이런 아이러니하면서도 신기한 장면은 작가에게 이 그림에 대한 생각을 부추겼을 것이고 이 그림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J.W.Waterhouse의 미술을 본 개인적인 느낌은 1800년대 말 작가 답지 않게 상당히 고전적인 미술에 가까운데
미인들에 대한 관점이 오늘날과 비슷하여 내가 봐도 정말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여인의 모습은 현대적이다.
사실 옛날에 그린 그림들에 보면 비너스를 주제로한 그림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 않나?
아 이 당시에는 이런 여인을 아름답다고 했구나.. 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고 마는데 Waterhouse 가 그린 그림에
나오는 여인은 그런게 다르다. 그래서 와 님프들이 이렇게 예쁘믄, 그 속에 묻힌 남자는? 뭐 이런
경험을 예전 그림을 볼 때와 다르게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_-
또 섬세하고 따뜻한 색감이면서, 여인의 시선과 포즈가 절묘해서, 그런 부분을 현대적 감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의 방식에 따른 현대적 감각의 미가 조화되었다고나 할까.. 그런 작가인 것 같다.
어떨 때는 길게 그린 여인의 모습이 클림트의 분위기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 아무튼 고전적 그림이 갖지 못한
특이한 감각을 지닌 작가인 것 같다.
또 여러가지 재미있는 신화적인 소재를 찾아 그린 그림이 많아.. 뒷얘기를 캐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그림을 보고 추론해보는 재미도 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