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나사로의 부활’



<위 – 고흐, 나사로의 부활>
<아래 – 렘브란트, 나사로의 부활>

고흐의 성경을 주제로한 3부작 중 하나이다.
나사로의 부활..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 아닌가? 바로 램브란트의 그림, 나사로의 부활의 모작이다.


무언가 많이 다르다. 그가 밀레의 작품을 모사할 때는 똑같이 그렸다. 그런데 많이 다르다.
좌우가 바뀌었고, 예수님 대신에 태양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하나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나사로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넣었던 점이다.
아 우선 램브란트 그림을 보자.
절묘한 삼각형 구도를 이루었다. 그리고 삼각형 꼭대기에 예수님의 손이 있다.
권능의 오른팔을 드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빛이 비추인다.  나사로는 일어난다. 그는 4일 만에 일어났다. 몸에서는 썩은내가 났다.
램브란트는 나사로의 몸을 죽어져가던 모습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놀라는 여인의 얼굴이 빛난다. 마리아나 마르다 일 것이다.
나사로의 표정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고흐는 동생에게 자신은 렘브란트가 빛의 음영을 통해 이룩하고자 했던 것을 자기는 색깔 사용을 통해 이룩해보고자 한다고 하였다.

‘무덤과 시체는 보라색, 노랑, 흰색이다. 부활한 나사로의 얼굴에서 손수건을 걷어내는 여인은 초록색 옷에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은 검은 머리에 초록색과 핑크색 줄무늬가 잇는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뒤쪽에 푸른색의 시골 언덕이 있고, 그 위에 떠오르는 해가 있다. 이러한 색깔들의 배합이 그 자체로 빛과 그림자가 표현하는 시각적 효과를 보고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색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고흐의 노란 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부활, 사랑을 대표하기도 한다.

태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고흐가 태양신을 섬겼다던지, 자연주의로 회귀했다던지 하는 말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3세기 이후 화가들은 태양을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해바라기도 마찬가지이다. 해바라기는 전통적으로 경건과 헌신과 관련된다. 고흐는 태양을 그림으로서 믿음의 치유능력을 나타내고 싶었다.

죽어져가는 자신을 살려내실 그리스도.

벤베누토 첼리니, ‘그리스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1556-62년경.
대리석, 높이 143.5cm. 스페인. 에스코리알.
산 로렌초 엘 레알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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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계로 와서 또 하나의 즐거운 일은 도계도서관을 찾는 일이다. 그곳에 가면 값이 비싼 커다란 화집이 꽂혀 있다. 나는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빌려다가 읽고 또 본다. 바쁠 것도 없으므로 반납기간을 한 주간 더 연장해가면서 곁에  두고 내 책인 것 처럼 읽고는 다시 도서관에 보관해놓는다―마치 내 책인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림 읽기에 관한 책들도 곁들여서 읽어내려간다. 역시 천천히, 천천히 읽는다. 미술에 관한 이론서 한 권과 화집 한 권을 대출해서 연장기간까지 2주간 동안 틈틈이 내 영혼을 시원하게 하고 맑게 한다. 그래서 어줍잖은 ‘그림 읽기’도 시도해 볼 염량을 가져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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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보면 좀 당혹스러운데–그래서 나도 괜히 도서관 얘기를 늘어놓고 있나–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난감하다. 전혀 익숙치가 않다.  예수 그리스도-십자가-하나님의 아들-구세주가 도저히 이 적나라한 나체하고는 연관이 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바로 이런 생각들이 우리들을 외식적인 신앙으로 이끌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벌거벗은 채로였다. 예수님의 옷은 로마 병정들이 가져가 버렸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한복음 19:23-24). 옷을 빼앗긴 예수님은 당연히 벌거벗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면 한결같이 허리부분을 천으로 가려놓았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본 모습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위선적인 신앙을 강요했던 것이 바로 이런 그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예수님이 참 사람이셨고 우리를 위하여 ‘수치’를 당하셨다면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그 수치를 절실하게 깨달을 때에라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보던 그림이나 조각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수치]을 놓치게 하였다. 마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어서 경건의 탈을 덧씌우면서 우리를 분리주의자[바리새인]로 만들어 버렸다. 감히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그리겠는가? 하는 경외의 마음으로 했겠지만, 그 처음의 마음과는 너무도 먼 곳에 와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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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본 것은 데이비드 핀이라는 이가 지은 <<조각 감상의 길잡이>>라는 책에서였다. 역시 도계도서관에 있는 책이다. 이 저자는 이 조각을 힘들게 촬영했다고 적고 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또 다른 훌륭한 작품으로는 첼리니가 흰 대리석을 쪼아 만든 그리스도의 누드상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 스페인의 에스코리알(Escorial: 마드리드 북서쪽에 있는 유명한 건축물-역주)에 보관되어 있다. 나는 이 작품과 좀 특이한 인연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작품이 16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건너왔을 때, 스페인의 국왕은 적나라한 그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다 자신의 스카프를 조각의 허리 부분에 묶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항상 흰 천이 정갈하게 허리에 둘러져 있게 되었다. 언젠가 나는 첼리니에 관한 책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에스코리알에 가서 허락을 받은 다음, 그 작품이 한쪽 벽에 세워져 있는 한 작은 성당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그리스도의 허리에 걸쳐 놓은 천 조각을 보고는 나를 안내했던 사람에게 내가 사진을 찍을 동안만이라도 그것을 좀 치워줄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그럴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마드리드 시의 관계 부서를 찾아가 문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촬영 장비들을 준비하고 다른 부분들의 사진을 먼저 찍고 있을 동안 빨리 좀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람이 문의를 하러 떠났고 대신 자리를 지킬 다른 사람이 한 명 불려 왔다.
  삼십 분 가량 지나자 작업복 차림의 신부님 한 분이 총채로 이곳 저곳의 먼지를 털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그리스도상 앞으로 와서 그 천 조각을 걷어 내고는 조각 전체를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기뻐서 그분에게 내가 사진을 찍을 몇 분 동안만 그것을 그대로 치워주실 수 없겠냐고 부탁드렸다. 그분이 쾌히 승낙을 해주어서 그 작품이 지닌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몇 통의 필름에 담을 수가 있었다. 내가 촬영을 마치자 그 신부님은 천 조각을 원래 자리에 다시 둘러 놓고는 총총히 그곳을 떠나셨다.
  이윽고 처음의 그 안내인이 되돌아오더니 책임있는 관계자들과 연락을 해보았지만 불행히도 그 작품의 누드 상태로는 촬영 허가를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내가 필요한 사진을 다 찍었다느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사람은 몹시 화를 냈다. 내게 그 사진들을 폐기시키겠다는 각서를 쓸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크게 혼날 줄 아시오!”라고 겁까지 주었다. 좀더 지위가 높은 한 관리는 불법적인 원판들을 확실히 없애기 위해 내 필름들은 스페인 정부의 관계 당국에 의해서만 인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단 한 장의 사진도 포기할 수 없다고 버텼는데, 만일 우리 집사람이 기지를 발휘하여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체포까지 당할 뻔했다. 아내는 내가 대부분의 필름들을 이미 안전하게 치워 두었다는 것을 알고는 카메라에 남아 있는 필름만 꺼내서 그게 전부인 양 주어 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귀띔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듯이 일부러 더 큰 제스처를 쓰며 나를 못살 게 군 그 사람에게 필름을 넘겨 주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고, 우리는 풀려났다.  (데이비드 핀 지음 / 김숙·이지현 옮김 <<조각 감상의 길잡이>> (시공사, 1993), 77~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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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어떤 수치와 욕을 당하셨을까? 별로 질이 좋지 않은 스캔된 사진 한 장으로도 뭔가 짚여오는 것이 있다.


<출처 : http://dokyesungsan.net >

The Parable of the Blind Leading the Blind, 1568, tempera on canvas, Galleria Nazionale at Naples


– 미술평론가 노성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 무슨 일일까? 한 무리 거지 떼가 겨울 스산한 들녘을 가로지른다. 모두 앞 못보는 소경들이다. 전부 여섯. 이 세상의 노동과 수고를 요구하는 날수와 같다. 이들은 마을을 뒤로하고 떠난다. 따뜻한 밥이라도 한 술 얻어먹었을까?
날을 도와 이웃 마을로 옮겨가는 길이다. 버젓한 큰길은 갈 수 없는 신세다. 마을 사람들 눈에 띄었다간 재수 옴 붙었다고 돌팔매를 맞을 테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는 불구자들이 천대를 면치 못하던 시대였다. 발길 드문 뒷길이 오히려 속 편하다. 그러나 뒷길이 노상 그렇듯이 눈 밝은 사람도 마달 위험이 도사렸다. 좁기도 좁지만 가파른 둑방길 좌우로 얼음처럼 차가운 도랑이 흐른다. 자칫 헛발질하는 날엔 영락없이 서리 맞은 배추꼴이 되고 만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속담을 좋아했다. 지금도 세상에서 속담이 제일 흔한 나라다. 브뤼겔은 속담을 붓끝에다 묻혀서 그림을 그리기 좋아했다. 글과 그림의 구별이 따로 없던 때였다. 브뤼겔은 붓으로 어처구니없는 세태를 비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위험한 사상을 말했다. 섭정 시대 네덜란드 사회는 자못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솔직하게 속을 터놓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말 한마디에 진실이 뒤집히고 이웃이 원수가 되기도 했다. 이럴 때 속담 한 마디는 한 잔 술처럼 아픈 생채기를 아물리는 처세였다. 속담은 아킬레스의 창날처럼 상처를 내기도 하고 아물게도 하는 힘이 있었다. 따끔한 교훈과 따뜻한 격려를 한꺼번에 담는 재치가 있었다. 16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앓듯이 내뱉는 속담 한 마디에 부끄러운 역사와 말 못할 진실을 담았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는 없다. 주린 이가 주린 이를 채우거나, 병든 이가 병든 이를 낫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불의가 정의를 일으키지 못하고, 거짓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미움이 사랑을 피워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다.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건 그림에나 있는 일이다. 전도된 세상, 바보 배를 타고 가는 바보 세상에나 있는 일이다.


마태복음 15장을 보자. 눈먼 길잡이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알고 이렇게 비유를 던진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진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심지 않으신 것은 모두 뽑힐 것이다.”


브뤼겔의 그림은 성서 이야기를 베꼈다. 교회 뾰족탑이 그림 복판에 솟아 있다. 성서의 관점에서 소경은 죄인이다.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으뜸 덕목이 밝은 눈을 가진 ‘슬기’(prudentia)라면, 그 반대말 ‘맹목’은 어리석음(imprudentia)의 표본이다. 소경을 믿고 따르다가는 필경 구렁에 빠지고 만다. 그러니 ‘하나님말고는 아무도 믿지 말아라’는 교훈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는 속담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거짓 교사를 겨냥한 비난에서 나왔다. 예수는 또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통해서 눈먼 세상을 일깨운 일이 있었다. 16세기 네덜란드는 눈을 뜨게 하신 예수의 기적 이야기를 육탐에 눈멀어 영혼의 눈을 앗긴 ‘눈뜬 소경’에 대한 비유로 바꾸어 읽었다. <이코놀로지아>를 쓴 체사레 리파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수의 기적 이야기는 이 세상 눈뜬 소경들을 인도하는 등불로 해석했다. “내 아버지가 심지 않으신 것은 모두 뽑힐 것이다”라는 예언은 실명의 저주로 읽었다. 소경의 실족은 교회의 등불을 외면하는 이교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브뤼겔의 그림에는 소경 여섯이 나온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세상 무대를 건넌다. 첫째 소경이 먼저 웅덩이에 빠졌다. 그가 끼고 다니던 악기도 박살났다. 둘째도 덩달아 비틀거린다. 눈두덩이 움푹하다. 누군가 그의 눈을 후벼팠다. 셋째도 걸음을 가누지 못한다. 눈이 흰자위를 뒤집었다. 흑내장이다. 넷째는 각막백반. 소경 가운데는 나면서부터 신의 은총을 여읜 사람도 있지만, 제가 지은 죄값으로 눈알을 뽑힌 사람도 있다. 셋째 소경은 멈칫하는 순간 교회를 올려다본다. 저 멀리 마을 한복판에 서 있는 교회는 첨탑을 뽐내며 어리석음의 구렁에 실족한 죽음의 행렬을 내려다본다. 넷째 소경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곧 닥칠 일을 보지 못하는 건 눈뜬 사람도 마찬가지다. 소경들은 하나같이 엉터리 예언자처럼 지팡이를 들었다. 무지와 거짓은 둘 다 지옥으로 직행하는 무거운 죄악이다. 길 잃은 인도자를 따라서 여섯 소경 모두 끈 떨어진 염주처럼 줄줄이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이다. 구렁텅이에는 일곱 가지 악덕이 우글댄다.


브뤼겔은 소경 여섯을 길게 펼쳐진 넓은 가로 무대에 배치했다. 지평선은 높이 끌어올렸다. 이들은 걸인, 순례자, 나그네 차림이다. 세상의 무대를 지나가는 이들의 행렬은 해골들이 서로의 뼈를 맞잡고 추는 죽음의 무도를 닮았다. 소경들의 머리를 사슬로 묶어 보면 왼쪽 지평선 부근부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해서 차츰 오른쪽 화면 모서리로 곤두박질친다. 지평선과 소경들의 행렬은 다른 방향이다. 그림 속의 큰 동선을 두 개 끄집어낸다면 지평선과 사선이다. 이 둘은 그림 왼쪽 귀퉁이에서 시작해서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브뤼겔의 그림이 대개 그렇듯이 하늘 꼭지에 눈을 두고 내려다보면,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자기도 모르는 커다란 운명의 수레바퀴에 실려서 서서히 회전한다. 그렇다면 소경들의 비극은 단지 그들의 불행이 아니라 눈뜬 소경들이 타고 있는 바보 배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아니면 섭정기 네덜란드의 암담한 운명에다 성서의 비유를 씌웠는지도 모른다.


그림 왼쪽 아래 귀퉁이에는 마른 관목 한 그루가 을씨년스럽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는 ‘플루토의 나무’ 또는 기독 도상에서 자주 나오는 ‘사망의 나무’다. 반대편 오른쪽 귀퉁이 여울가에는 풀꽃이 한 송이 피었다. 붓꽃이다. 기독 미술은 꽃잎이 칼날처럼 생긴 붓꽃을 덕목의 꽃말로 읽었다. 웅덩이에 빠진 첫째 소경은 팔을 들어 붓꽃을 더듬는다. 사망의 계곡에서 구원의 향기를 맡았다.


그림 밖을 내다보는 이가 있다. 흰 고깔을 쓴 둘째 소경이다. 그는 우리와 눈길을 맞추면서 외친다. 실명의 눈짓으로 삶의 헛된 가치를 증언하고 죽음의 행렬에 따라 붙으라고 초대한다. 브뤼겔은 빛과 그림자를 움푹하게 패인 눈두덩에 고루 발라 두었다. 부재가 존재에 대해 이처럼 사무치는 견인력을 가졌던 적은 드물었다. 성서를 설교하는 그림 속의 안내자가 이처럼 공허한 눈빛을 소유했던 적도 없었다

고흐, ‘첫걸음’


고흐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 생각한다. 밀레작품의 모작이지만… 밀레와 같이 그도 농민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하던 아버지는 삽을 내려놓고 이제 곧 첫 걸음마를 떼려는 아이를 향해 두 팔 벌리고 있다. 아이도 아버지를 바라보며 같이 두 팔을 벌렸다. 아버지는 앞에서 아이를 반기고 어머니는 뒤에서 흐뭇한 모습으로 받쳐주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

인생은 과연 무의미한가? 인간은 이 세계에 이유를 모르고 태어난 외딴 섬인가. 우연히 만들어졌나. 인간은 기계, 분자들의 집합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이 세상은 인간을 위해 지어졌다. 인간의 삶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걸음을 떼는 아이의 모습은 사람의 일생중 가장 희망한 장면을 보여준다. 희망, 삶의 의미, 존재의 이유. 나는 고흐의 첫걸음에서 이런 것들을 발견한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다. 고흐의 그림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찾아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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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흐의 영성과 예술을 읽으면서 이 그림을 다시 떠올렸다. 고흐의 그림 속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가득한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 농민의 삶 속에서 찾았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전형, 삶의 가치를 담아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밀레의 그림은 따뜻하기 그지 없다… 그림만 바라보아도 행복해질 것만 같다.

200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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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아트홀에서 퍼온 글…

이 작품은 고흐의 1890년 작품으로 밀레의 그림을 다시 그린 것입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이지요. 한 아이가 처음 걸음을 내딛으려 하는 순간입니다.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무척이나 설레이는 듯한 아이 그리고, 아이의 첫걸음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함께하는 부모. 아주 행복하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고흐는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답니다.
1889년 5월에 고흐는 생레미에 있는 생 폴 드 무송 정신병원에 들어가 그 곳에서 1년 정도를 보내게 됩니다. 고독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광기와 싸워야 했던 당시의 고흐의 그림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두려움과 슬픔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당시 고흐는 현실속의 사람들을 그리는 대신 밀레, 들라크루아, 렘브란트, 도미에등의 작품속 인물들을 다시그리곤 했는데요,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는 두려움과 슬품 그리고 고독보다는 설레임과 행복 그리고 사랑이 가득한 듯합니다. 힘들었던 시기지만, 고흐에게 자신과 똑같은 빈센트라는 이름을 가진 조카가 생긴 해 였습니다. 아마도 이 그림은 자신의 조카를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들의 행복을 빌면서 말입니다.
혹은 자신이 버렸던 크리스틴과 그녀의 아이를 생각했을까요. 평생 자신이 이루지 못했지만, 가슴 깊이 동경한 삶의 풍경일까요 어떤 경우든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고독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자신의 덧없는 인생에 한없이 슬퍼했을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밀레의 그림을 다시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고흐의 비극적인 개인사와 겹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보르헤스의 소설중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글자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시 배껴 쓴 작품역시 위대한 작품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맥락을 강조한 것이리라 생각되는군요.
고흐라는 맥락은 이 작품을 한없이 아름답게도 한없이 울적하게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

Henri Nouwen


“고흐만큼 나에게 영향을 준 작가나 화가가 없었다. 깊은 상처의 사람, 놀라운 재능을 가진 고흐는 나 자신의 아픔과 재능에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흐는 나의 전 생애의 영적 인도자로서 나의 영적 생활을 이끌어 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고흐야 말로 신학적 성찰을 위한 참된 근원이 됨을 발견하도록 한 것이다. 고흐는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 뿐 아니라, 삶의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고 있다. 그의 그림은 마음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고, 고흐는 언제나 한 목회자로 남아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그가 회개를 촉구하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이 사실이 바로 고흐의 그림이 지닌 깊은 우주적 호소력일 것이다. 고흐는 사람의 실패와 고난과 기쁨, 그 모든 것을 겪었고 또 그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그의 그림 속에 모두 표현했다.”

 – Henri Nouw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