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달톤의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의 성과가 저조한 이유는 자본효율성(ROE)이 낮기 때문이이고 미흡한 자본배분(투자의사결정 및 주주환원)이 원인’ 이라는 판단에는 동의하나 해결하기 위한 제안에는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최고 배당세율 감소에는 동의하나 최고 상속 및 증여세율 감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업이 이미 법인세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줄 때 또 내는 배당세는 이중과세 성격이 있어서 줄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또 어차피 자사주매입소각이라는 방식으로 세금없이 배당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배당세를 줄이거나 없애도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동시에 배당세율 감소는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증세는 다르다. 나는 최고 상증세율을 내리는데 찬성하지 않으며 도리어 어떠한 편법승계도 대기업집단 뿐 아니라 모든 기업집단에 적용해서 뿌리뽑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아들이나 손자에게 승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학교수나 의사라는 직업을 원하는 경우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하면 어떠한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반대할 것이다(아 당사자는 다를 수도..ㅋㅋ). 만약 이게 가능하다고 하면 사회가 매우 비효율적이고 정의롭지 못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도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상장기업의 경영권에 대해서는 왜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가? 상장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매우 중요한 경제 주체다. 권한도 막강하다. 대통령은 5년이라는 임기가 있지만 상장기업의 경영권의 임기가 무제한으로 연장되며 기업에 있어서 완전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막강한 권한과 의무가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자녀에게 세습이 될 때 그것은 의사가 교수라는 직업이 세습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 아닌가?
물론 기업의 소유권은 사유재산이므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상속 및 증여세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부의 무상이전 성격이기 때문이며, 타고난 신분과 상관없이 정당한 경쟁을 통해서 노력을 통한 보상을 받는 체계가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머 그런 사회정책적인 의미를 떠나 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오히려 상증세는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장회사의 경우는 대부분 최대주주 외에도 많은 주주들과 직원들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한다. 이런 경우에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부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의 축적된 자본의 무상이전으로 공정한 경쟁없이 경영진이 선출되는 것은 분명한 문제가 있으며 그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워렌버핏이 버크셔헤더웨이를 아들에게 물려줄 거라고 말했다고 생각해보자(끔직하지 않은가?) 스티브잡스가 애플을 자식에게 물려줬거나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을 빌게이츠 아들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소프트뱅크 경영을 손정의 아들이 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연히 디스카운트를 받을 것이다. 기업 경영은 기업을 크게 성공시킨 창업자의 경우 유지하는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녀가 그 기업을 경영하는 건 가업승계니 하는 단어로 포장할 것이 아니다. 그게 좋다면 왕정시대로 돌아가자.
기업의 경영권이 자녀에게 승계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아야 기업 지배구조가 바뀔 수 있고, 그래야 자본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본이 경영에 깊게 관여하면서 ROE를 개선시킬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게 나의 기본 생각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동의하지 않음
달톤이 국민연금에게 제안한 구체적인 방안의 내용과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국민연금에게’ 그러한 것들을 제안하거나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은 의무연금이기 때문에, 연금수익자들의 권한이 연금의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고 정부의 입김이 관여될 수 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해외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보면 블랙록이나 뱅가드그룹 같은 민간투자기업들이 상당 부분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그러한 제안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국민연금은 정부기관에 가까워 제대로된 경영권 행사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공기업이 높은 ROE를 추구할 수 없는 이치와 비슷하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기업의 주주가치 향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처음부터 버려야 한다.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에 관여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 권한은 악용될 소지가 더 커진다고 보는게 나의 시각이다(삼성물산 합병 사례는 단적인 예다). 차라리 국민연금은 최대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반 소액주주들의 판단에 비례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냥 간섭하지 말고 가만 있는게 최선이다.
달톤은 국민연금에 전문인력 확충, 전문성 강화, 정부 및 다른 기관들로부터 독립성 유지를 제안했다. 내용은 좋다. 하지만 나는 이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마치 전경련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라라고 제안하는 거랑 비슷하달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반대로 국민연금의 패시브 운용 강화를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은 그냥 쓸데없이 인력낭비, 운용보수 낭비하지 말고 모든 국내 상장주식을 똑같은 지분율로 사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영권도 지배주주를 제외한 다른 일반주주들의 판단에 비례하여 행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수익자인 모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중립적으로 비지배주주의 의결권행사에 비례해서 하는게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최대주주 지분이 50%이고 국민연금이 10%를 가지고 있는데 10%에 해당하는 소액주주가 찬성하는 안건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2%의 지분만큼 그 안건에 찬성하면 된다).
대학입시제도의 실패를 보면 알 수 있다
능력있는 인재를 뽑아야 한다고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등을 강화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변했는가? 기형적인 학생부만 만들었다. 능력에 따른 진학이 아니라, 부모의 재력이나 정보력으로 인한 입시가 더 강화됐다. 그냥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평가지표인 수능만 보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나는 국민연금도 권한이 강화되면 마찬가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사회책임투자니 ESG니 성평등투자니 이런거 괜히 감안하지 말고 그냥 패시브로 운용하면 중간이라도 갈 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ESG 평가가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성있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시간이 흘러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례없는 고속성장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은 창업자나 창업자 2세 정도가 경영하고 있고 이제 3세 경영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코리아디스카운트가 존재한다. 이 집안 경영체제가 무너지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뀔 때 주주환원 뿐 아니라 자본배치의 효율성이 증대되고 이를 통해 기업의 ROE가 개선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증세율을 낮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회피하기 위한 편법증여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하고 국민연금 같은 정부의 간섭을 받는 집단이 사기업의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나는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데 과거 한 두 세대 정도는 높은 상증세를 부담하면서도 편법을 동원하거나 일감몰아주기, 옥상옥의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영권 유지가 어느정도 가능했지만 한 세대 정도의 기간이 더 흐른다면 더이상 이러한 편법승계가 어려워지는 시점이 올 것이고, 그 때 쯤 지배구조가 바뀌어 자본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들의 경영이 시작된다면 이러한 코리아디스카운트 문제도 어느정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풀무원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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