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 생각한다. 밀레작품의 모작이지만… 밀레와 같이 그도 농민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하던 아버지는 삽을 내려놓고 이제 곧 첫 걸음마를 떼려는 아이를 향해 두 팔 벌리고 있다. 아이도 아버지를 바라보며 같이 두 팔을 벌렸다. 아버지는 앞에서 아이를 반기고 어머니는 뒤에서 흐뭇한 모습으로 받쳐주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
인생은 과연 무의미한가? 인간은 이 세계에 이유를 모르고 태어난 외딴 섬인가. 우연히 만들어졌나. 인간은 기계, 분자들의 집합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이 세상은 인간을 위해 지어졌다. 인간의 삶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걸음을 떼는 아이의 모습은 사람의 일생중 가장 희망한 장면을 보여준다. 희망, 삶의 의미, 존재의 이유. 나는 고흐의 첫걸음에서 이런 것들을 발견한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다. 고흐의 그림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찾아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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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흐의 영성과 예술을 읽으면서 이 그림을 다시 떠올렸다. 고흐의 그림 속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가득한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 농민의 삶 속에서 찾았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전형, 삶의 가치를 담아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밀레의 그림은 따뜻하기 그지 없다… 그림만 바라보아도 행복해질 것만 같다.
200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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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아트홀에서 퍼온 글…
이 작품은 고흐의 1890년 작품으로 밀레의 그림을 다시 그린 것입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이지요. 한 아이가 처음 걸음을 내딛으려 하는 순간입니다.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무척이나 설레이는 듯한 아이 그리고, 아이의 첫걸음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함께하는 부모. 아주 행복하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고흐는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답니다.
1889년 5월에 고흐는 생레미에 있는 생 폴 드 무송 정신병원에 들어가 그 곳에서 1년 정도를 보내게 됩니다. 고독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광기와 싸워야 했던 당시의 고흐의 그림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두려움과 슬픔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당시 고흐는 현실속의 사람들을 그리는 대신 밀레, 들라크루아, 렘브란트, 도미에등의 작품속 인물들을 다시그리곤 했는데요,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는 두려움과 슬품 그리고 고독보다는 설레임과 행복 그리고 사랑이 가득한 듯합니다. 힘들었던 시기지만, 고흐에게 자신과 똑같은 빈센트라는 이름을 가진 조카가 생긴 해 였습니다. 아마도 이 그림은 자신의 조카를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들의 행복을 빌면서 말입니다.
혹은 자신이 버렸던 크리스틴과 그녀의 아이를 생각했을까요. 평생 자신이 이루지 못했지만, 가슴 깊이 동경한 삶의 풍경일까요 어떤 경우든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고독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자신의 덧없는 인생에 한없이 슬퍼했을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밀레의 그림을 다시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고흐의 비극적인 개인사와 겹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보르헤스의 소설중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글자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시 배껴 쓴 작품역시 위대한 작품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맥락을 강조한 것이리라 생각되는군요.
고흐라는 맥락은 이 작품을 한없이 아름답게도 한없이 울적하게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