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을 하늘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19-20)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늘은 하늘나라, 즉 천국입니다.
그럼 천국은 어디 있을까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
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즉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 어디 있을까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1)

보물이 있는 곳은 지갑이므로 지갑속에 우리 마음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보물을 우리 지갑 속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혈루증 여인

대학부 내에서 마가복음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주 본문은 열두해 혈루증 앓은 여인이야기였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으로 부터 병고침을 받았다는 것 자체는 별 다를 것 없는
사건이지만, 이 사건을 아주 독특하게 만들어 주는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는 예수님의 의지로 고침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려고
마음을 먹기도 전에.. 고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마치… 주님의 능력을 탈취해 가듯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그가 나을 것이라는 그 믿음은
다른 사람들 처럼 예수님을 설득하여 고쳐달라고 애원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병이 떠나가기를 간구하시기도 전에 고침받는 역사를 만들어 냈다.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녀는 단순히 사람들의 소문만 듣고 그런 믿음을 가졌을 터인데.

나도 한번, 하나님의 능력을 탈취할만한 그런 믿음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해보고 싶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시 127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뿌리는 씨는 복음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뿌린 기도가 바벨론 1차귀환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때가 되니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죠.

선의의 거짓말

어떤 책에서 이런 예를 들었다.

한 그리스도인을 자칭하는 농구선수…
성경에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기에..

“저는 속임 동작(훼이크)를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라고 하
셨습니다.”

라고 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느냐고…

출애굽기에 보면 산파들이 이스라엘 아기들을 살려주고는 바로왕에게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부러 살려준 게 아니라 자기가 도착하였을 때 이미 그들이 아이를
낳아서 그렇게 된것이라고 둘러댄다. 말씀에 보면

산파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출 1:21)

라고 되어 있다. 그들의 거짓말을 가지고 성경에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
히려 좋은 평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하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하나님께서 반대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선의의 거짓말인지 자신을 위한 핑계인지는 끝
까지 고민해보아야할 문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의 사랑이라
말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으로 묵상하면서

아! 그것이 아니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리스도 그분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
다. 오히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보여진 독생자를 아끼지 않는 하나님의 사
랑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앞에 드렸을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네가 네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줄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항상 이야기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뜨거운 사랑은 잊어가고 있지 않은가 돌아봅니다.
아들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